Thursday, January 18, 2007

춘향가 중 쑥대머리 The Stalk Hair from Chunhyangga

쑥대머리 구신형용(鬼神形容)
적막옥방(寂寞獄房)으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 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漢陽郎君) 보고지고.
오리정(五里亭) 정별후(情別後)로 일장서(一張書)를 내가 못 봤으니
부모봉양(父母奉養) 글공부에 겨를이 없어서 이러난가.
연이신혼(宴爾新婚) 금슬우지(琴瑟友之) 나를 잊고 이러는가.
계궁항아(桂宮恒娥) 추월(秋月) 같이 번뜻 솟아서 비치고져.
막왕막래(莫往莫來) 맥혔으니 앵모서를 내가 어이 보며,
전전반칙(輾轉反側)으 잠 못 이루니 호접몽(胡蝶夢)을 어이 꿀 수 있나.

손가락으 피를 내여 사정(事情)으로 편지헐까.
간장의 석은 눈물로 임의 화상(畵像)을 그려볼까.
녹수부용(綠水芙蓉)으 연(蓮) 캐는 채련녀(採蓮女)와
제롱망채엽(提籠忘採葉)으 뽕따는 연인네도 낭군 생각은 일반이라.
옥문 밖을 못 나가니 뽕을 따고 연 캐겄나.

내가 만일에 임을 못 보고 옥중 원귀(寃鬼)가 되거드면,
무덤 근처 있난 돌은 망부석(望夫石)이 될 것이요,
무덤 앞에 섰난 남근(*나무는) 상사목(相思木)이 될 것이오.
생전사후(生前死後)으 이 원통을 알어 줄 이가 뉘 있드란 말이냐.
아무도 모르게 울음을 운다.

* 계궁 : 달나라의 궁전
* 항아 : 달나라에 살고있는 미인의 이름



판소리 여섯 마당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춘향가이며, 이 중 옥중가의 쑥대머리는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다. 새벽녘의 귀기에 젖은 한을 타향 만리 님께 전하는 애절한 절규를 명창들의 소리로 들으면 눈이 뜨거워지고 소름이 좌르륵 내리곤 한다.

그런데 가사를 보자. 산발이 되어 칼을 차고 옥에 갇힌 신세. 모진 고문과 오랜 감금으로 인한 고통에 피땀으로 범벅이 된 머리카락이 마치 쑥대처럼 딱딱하게 굳어 흐트러져 있다고 해서 '쑥대머리'이다. 슬프기보다는 무시무시한 장면.

수 년 전 KBS 역사 스페셜에서 방영한 이몽룡과 성춘향의 실화(춘향전의 이몽룡이 실존 인물 성이성임을 증명)는 예상대로 춘향의 일방적으로 비참한 생으로 끝나기에 상기하고 싶지 않다. 그녀는 목을 매 자결했다고도 하고 수령에게 매를 맞아 죽었다고도 한다. 죽음보다도 그에 이르기까지 춘향이 겪어야 했을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폭력과 고역을 생각하면, 이건 도무지 러브 스토리가 아니라 끔찍한 공포물이다.

밤새 쌓인 새하얀 눈밭에 자신의 발자국을 찍고 싶고, 추운 겨울을 견디고 기적처럼 새빨갛게 피어 오른 꽃을 꺾으려 하는 것이 인간이다. 대상이 순수하고 아름다울수록 더 더럽히고 망가뜨리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므로 춘향전의 사랑은 '춘향의' 사랑 이야기이다. '이리 오너라 업고 노자'던 도령은 실제로는 춘향의 의문스러운 죽음 이후로도 수십 년이 지나서야 그의 나이 53세 때 남원을 찾는다. 그것도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라의 명에 의해 어사로 보내진 것이다. 강직한 행실로 임금의 신임을 받던 그가 남원에 도착한 첫 날 눈보라 치는 밤, 주위의 눈을 무릅쓰고 늙은 기생을 광한루로 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들이 밤새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다. 기생은 그가 떠난 후의 춘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을까? 둘이서 수십 해를 묵혀온 회포를 나누었을까? 그가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더라도 혹여 쓰라린 한숨이라도 뱉었을까?

" 십이월 초하루 아침 어스름길에 길을 나서서 십리가 채 안되어 남원땅이었다.. 성현에서 유숙하고 눈을 부릅뜨고 (원천부내로)들어갔다... 오후에는 눈바람이 크게 일어 지척이 분간되지 않았지만 마침내 광한루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늙은 기녀인 여진(女眞)과 기생을 모두 물리치고 소동과 서리들과 더불어 광한루에 나와 앉았다. 흰눈이 온 들을 덮으니 대숲이 온통 희도다. 거푸 소년 시절 일을 회상하고는 밤이 깊도록 능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
--- 성이성, [호남암행록]


그래도 나는 그에게 애틋함을 느낄 만한 넉넉함이 아직 없다. 그에게 춘향은 일장춘몽 같은 젊은 날의 짧은 추억. 그가 춘향에게 주었던 것은 기껏 사과와 앵두였던가. 그에게 사랑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자기만족인가. 하지만 그가 춘향을 죽인 것은 아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명문대가의 선비답게 청춘의 일탈에 눈돌리지 않고 단호히 성실하고 충직한 삶을 살아냈던 것일 테니. 그의 무대에서는 자신이야말로 더없는 비극의 주인공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가문과 명예를 따라야 했던. (성이성은 22세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당시 과거 급제 평균 연령이 40대임을 감안할 때 매우 이른 33세에 병과에 합격한다. 그리고 오랜 기간 암행어사로 활동하며 실제로 (스승 조경남에게서 배운) 금준미주를 읊으며 세도가의 자제들을 파직시키고 사후에는 청백리에 봉해진다. 수재이며 정의롭고 고결한 성품이니 어릴 때부터 남달랐을 터, 춘향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다.)

'나는 당신을 죽도록 사랑합니다'라는 말의 정체는 '나는 당신을 죽도록 오해합니다'일지도 모른다   ---  법정

우리는 사랑이라는 착각 속에 상대가 아닌 자기자신만을 끊임없이 사랑하는 게 아닐까   --- 김수현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춘향이 지키고자 했던 것이 지나간, 짧았던, 무책임한 사랑이었을까? 빼앗는 자에게 그냥 먼저 주었다면 목숨이나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을... 사랑이란 허울 좋은 이름의 무지개에 홀려 전부를 잃은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이었을까? 시대의 횡포인 정절 관념에 사로잡힌 억울하고 외로운 죽음이었을까? 강요된 성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고지식한 피해자였을까? 완전 범죄에 성공한 타살이었을까? 부조리한 사회구조와 남성들의 폭력 본능으로 인한 희생으로 그녀의 삶을 규정지을 수 있을까?

인간은... '신념'을 위해서 죽음을 택할 수 있는 희한한 존재이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죽는 날까지 단 한 번도 가슴에 품어 보지 못하는 것을 끝까지 수호했던 전사이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스스로의 선택을 꺾지 않았던 의지의 화신이다.


ref.
KBS 역사스페셜 1999.12.04: 이몽룡은 실존 인물이었다 -> 동영상 보기 (해외)
설성경 (연세대) 발표: "이몽룡은 奉化의 실존인물 『成以性』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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