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27, 2006

Empire of Dreams - Rene Magritte exhibition @SeMA

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展 

 

2006-12-27 물 @서울시립미술관: 뮤젠

어머니가 르네 마그리트 애호가이시라 전시 기획단계에서부터 우리 가족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곧 벨기에 왕립 미술관에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이 완공되는데 이번에 전시된 대부분의 작품들이 거기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니, 앞으로 브뤼셀에 방문하지 않는 한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다.

어릴 적부터 친근하게 접해왔던 그의 대표작들을 직접 보는 즐거움이 남달랐다. 그런데 의외로, 유명한 작품들 중 상당수가 빠져 있어서 아쉽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지금 유럽 등 다른 곳에서 전시 중이라고 한다.


"나는 고대 혹은 현대 미술과의 단절을 선언한다."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면서도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과는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그의 작품은 '가장 현실적인 초현실'을 담고 있지 않나 싶다. 낯설지 않은 그의 상상의 세계는 순식간에 관객의 이성을 뒤흔들어 놓지만 결코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초현실주의는 우리가 꿈을 꾸면서 가졌던 것과 유사한 자유를 실제 삶에서도 요구한다."


2층을 반이상 둘러본 이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1시부터 시작된 도슨트의 가이드를 따랐다. 근간에 급격히 충실해지고 있는 국내의 전시 기획/진행의 일면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유익하고 재밌는 설명이었다. 마그리트는 지적이고 자유로우면서도 동시에 현실성과 적응력을 겸비한 사람 같다. 그는 본래 문학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 사실은 대학 전공을 떠나서도 장르가 극심하게 혼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미디어 분야를 맴돌고 있는 내게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방인의 눈이야말로 정확하고 심오한 것이다. 그의 타협하지 않은 개성과 형식적인 유미주의의 매혹을 털어낸 단순성이야말로 단지 초현실주의란 하나의 사조로부터 르네 마그리트라는 이름을 부각시킨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나의 회화에는 상징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징은 시의 신비한 현실에 집착하기 위한 것이며 전통에 매우 충실한 생각에 속한다."


대화의 기술, 1950 
캔버스에 유채 
65 x 81cm


전시된 작품 중 가장 좋았던 것은 <대화의 기술>이다. 도슨트의 설명으로 'REVE'가 프랑스어로 '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는 이 작품이 좀더 대작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나 역시 같은 아쉬움을 느꼈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는 캔버스의 사이즈에 의해 압도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위상을 관조하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쩐지 바벨 탑을 연상시키는 작품의 메시지가 너무나 모호하면서도 극명하다. 해석을 거부했다는 그의 작품들은 오히려 끊임없는 해석의 실마리를 던지고 있다.


"나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의 형체를 그리려 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나는 보이는 것만을 그린다."


작품제목 중 '흑마술'을 '검은 마술'이라 오역(?)한 것이 눈에 띄었다. 오컬트란 전문 미술사가의 영역은 아닌 모양이다. :p 마그리트가 에드거 앨런 포 등을 원작으로 하는 판타지 영화를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홈페이지에서 읽고 순간 놀랐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마추어 영화감독으로서의 마그리트'라는 부제를 단 3층의 비디오 전시장에서는 최근에 들었던 실험 애니메이션 강의와 맞물려 소위 디지털 혁명 이래의 대중문화/대안예술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마그리트의 선견에 충격을 받았다. 요즘에야 나를 비롯하여 이미 미디어가 크게 변했기 때문에 또는 계속해서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미디어에 주목하는 것이다. 새로운 형식은 새로운 내용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현재의 미디어 아티스트/디자이너들은 이끄는 자이기보다는 따르는 자에 그친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아직 미디어를 온전하게 도구화하지 못했다고 본다. 오히려 미디어에 압도되어 있다고나 할까. 다시 지적하자면, 엄격한 의미에서, 현대의 미디어 아티스트들 다수가 예술가라 지칭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근간에야 겨우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다음 단계로 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아직 등장하지 않은 방법과 형식을 초월하여 의미론적인 실험과 실험정신을 넘어서는 유희를 즐겼던 그는 정녕 천재였다.


"말은 이미지가 보여줄 수 있는 것,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 언어가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이미지가 보여줄 수 없다. 그러나 그려진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과 말로써 표현되어지는 것은 같은 것이다."


우리가 지금 아는 것을 그는 먼저 알았다. 아니, 우리가 지금 좋아하는 것을 그는 먼저 좋아했다. cut & paste, 중첩, 자기복제, 배치, 오브제 중심, 왜곡.

말을 배우기 전부터 달리를 알았고 그를 모방했지만 그를 좋아했던 적이 없었다. 데 키리코의 작품들을 광적으로 좋아하지만, 그의 작품 중에는 내가 혐오감 이외의 관심을 갖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다. 르네 마그리트는 늘 쉽고 친밀감을 느꼈던 만큼 만만하게(?) 여겼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지적이고 철학적인 화가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나는 달리를 존경하고 데 키리코를 해석하며 마그리트를 사랑하게 되었다.



  • 수박 2006/12/30 13:27 # 삭제 답글

    정말 특이한 그림을 그리던 사람이죠. 어떤 백화점 벽에도 이 사람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거 같더군요.
  • ALBINO 2006/12/30 14:37 # 삭제 답글

    엉뚱하게도 여러 입문서들을 보다가 마그리뜨에 '재미'를 느꼈어요. 본인에겐 죄송하지만, 이 사람 정말 재밌는 사람 같아요. 그저 그런 것들이 왔으려니 했는데 가 봐야 겠네요.
  • rayray 2006/12/30 15:19 # 삭제 답글

    와... 재밌겠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 우울한달 2006/12/30 16:30 # 삭제 답글

    으으으
    저도 빨리 가야할텐데
    요즘 좋은 전시는 너무 많은데 시간은 잘 안나네요
  • SophistLaM 2006/12/30 18:23 # 삭제 답글

    입시하면서 지겹게 보아왔던 작품들.
    그래도 볼때마다 즐거운 것들이지요. 이번 전시는 오래가니까 설휴가때 시간 좀 내어봐야겠네요.
  • aidos 2006/12/30 18:47 # 수정 삭제 답글

    수박/ 중절모 쓴 신사들이 하늘에서 마치 비처럼 내려오는 듯한 <겨울비>를 말씀하시나 봅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었더군요.

    ALBINO/ 전시를 보시면 더욱 재밌는 사람이라고 여기실 것 같습니다. ;)

    rayray/ 공감하셨다니 반갑습니다!

    우울한달/ 4월 1일까지라 하니 시간 나실 때 천천히 가보세요.

    SophistLaM/ 전시장에 가시면 아마 좀더 새롭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요.
  • 혀니 2006/12/31 04:56 # 삭제 답글

    앗, 한국에서 마그리뜨 전을 하는군요! 아, 가보고 싶다... 달리도 데 키리코도 좋지만 마그리뜨가 가장 좋아요. 뭐랄까, 보고 있으면 내 머릿 속이 막 움직이는 게 느껴져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를 쓰게 만드는 아주 재밌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giRL 2006/12/31 12:50 # 삭제 답글

    블록버스터 전시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충실한 기획이라니 한번 가봐야겠군요. 링크 신고합니다.
  • aidos 2007/01/01 21:54 # 수정 삭제 답글

    혀니/ 외지에 계신가 봅니다. 오- 생동감 있는 표현! 여지를 열어 두는 예술이 더 좋죠~ ^^

    giRL/ 네. 근간의 대형 기획전들이 너무 속보이는 면이 있긴 합니다...만! 벨기에 왕립 미술관에서 매 작품에 맞는 조명의 조도까지 일일이 맞추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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