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방이 너무 지저분해서 진공청소기 한 번 돌리고 나니 기운이 없어서, 남은 핏자를 먹으면서 밥을 했다. 야심차게 감자와 아스파라거스를 넣은 냄비 밥에 열무김치를 비벼 먹으려고 들상추를 넣은 된장국까지 완벽하게. 웬일로 초인종이 울렸다. 행색이 말이 아니라서 못 들은 척하고도 싶었지만 혹시 그쪽에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터폰을 들고 "할로?" 하니 뭐라고 하는데 키가 없다는 소리를 무척 의아스럽게도 영어로 하는 것 같아서 다른 방에 사는 사람인 줄 알고 현관문을 열었다. 상황을 모르겠어서 문을 열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기척이 없어서 청소하시는 분인가 했다. 이 건물 관리회사 직원 분들이 주로 토요일에 와서 일을 하시는 것 같아서. 국도 끓고 있고. 그런데 노크 소리! 그 순간... 혹시? 혹시? 달려가서 벌컥 여니, 역시!!! 오, 독일 아주머니, 너무 고마워요! 막스 벤제였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책이 제일 먼저 도착한 것. 크리스마스가 오늘인 듯. 헬무트 포스텔, 고마워요.
'1차 자료를 구하는 데 아직까지도 애를 먹고 있어서...'이라는 메일을 드래프트 상태로 저장 중이었는데, 적어도 이제는 그런 변명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 아, 살 것 같아!
헤겔 때문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사실 반이나 있었는데... 그냥 열심히 하자고 결심했다. 천재 번역자 전 선생님이 최근 헤겔 번역+해설서 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던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었나 보다.
아침엔 한여름 같더니 광풍을 동반한 소나기가 몰아치다가 지금은 쾌청하다. 일희일비 인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