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20, 2021

블랙 Black (2005, Sanjay Leela Bhansali)

Sanjay Leela Bhansali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 (2005) Black 블랙 

@iMDb / @naver (주의! 영어 위키피디어는 처음부터 스포일러로 시작한다.) 

cf. 장호정 편역 (2014) 헬렌 켈러는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 — 앤 설리번의 기록

 

2021-05-20 나무의 새벽 @내 방  

수상을 목적에 두지 않았다. 의외다. 그렇다기엔 너무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까. 이런 천박한 말이나 떠올렸던 내가 너무 싫어. 

영화를 본다는 게 제정신일 리가 없는 날짜다. 유딩 수준의 현실도피 중이다. 헛된 밤샘이라도 하고 한심한 이메일이라도 쓰는 것은 그래도 정상적인 사람의 범주에는 드는 짓이다. 정상적인 학생은 아니겠지만. 헛되도 정직한 밤샘은 하기 싫고 최소한의 예의(=염치없음)를 보이는 어려움은 더 싫고. 양심은 있다고 자지도 못하겠고. 지질지질이라 나만 볼 낙서까지 남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확인 사살도 아니고. 접싯물에 두 번 죽자는 건가. 돈 내고 보려고 여기저기 헤매다 하릴없이 유튜브 불법 영상(영어 자막)으로 보았다. 명작으로 유명하다면서 5년째 삭제되지 않고 있다니... 

자기 정체성을 자신이 오롯이 정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요인에 대해서는 감히 투쟁이라는 말을 쓸 자격이 나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은 자기 정체성 중에는 원래부터 오로지 타인만이 정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국회의원, 남편/아내가 대표적이다. 제도가 정하는 직업이나 시험이 정하는 직장 등은 늘 인기가 많다. 대중이 정하는 것들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는 특정한 한 사람만이 정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애인, 약혼남/녀, 사/제. 그냥은 제자만 그렇고 스승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적어도 내 경험상으로는 그렇지 않다. 

어쩌면 결정력이란 측면에서만 보면 상하의 순서가 뒤집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제자는 일단 받아 두려고 하는 경우가 많더라. 심지어 필요가 없고 더 심지어 의욕이 없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그런가? 그래도 한국의 학생들은 아직도 착해서 관계가 아닌 직업에 따라 바로 인정해 준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제자만 종속적 정체성인 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사실 나로서는 알 수가 없을 법한 것도 괜찮을 세상일 텐데, 뼈저리게 실감하는 경험을 했다. 잠시 진짜 수족이란 것이 되어 봐서. 제자의 탈을 쓰고 있어서 스승의 탈을 쓸 수밖에 없는데 그저 강탈만 당하는 지경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했지만 저쪽 고래들이 너무 강력하고 거대해서 약한 쪽 고래를 도울 수밖에 없었다. 소가 웃을 오지랖이지만. 일단 먹여 살려야 하는 존재들이라 버릴 수 없는 사정을, 심정을 이해했으니까. 결과는 물론 등만 터지지 않았고 다행히 나만 죽었다. 사리 예측 못 할 만큼 멍청했던 것이 아니라서 괜찮을 줄 알았다. 자초하는 거였으니까. 이쪽이 더 멍청한 듯. 하지만 헤아림이 없어서 조직의 생리를 몰라서 아무런 예측을 못 했던, 순전히 자기가 얼마나 센 줄 알기가 귀찮다고 약한 척하고 말았던 고래는 적어도 끝까지는 가지 않을 기회가 다름 아닌 자기자신에게 무수히 있었음을 지금은 좀 알까? 궁금하지 않게 된 것은 나에게 온 행운이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나고, 곧 사라질 귀인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아무것도 바란 것이 없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스승의 탈을 쓰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을 너무 잘 알게 되었으면서 제자가 되려 했던 과욕에는 응보가 따르니까. 이공계에서 학생은 자식보다 버거운 상황이 벌어질 때가 있고, 운이 정말 없는 극소수의 경우에는 제자가 강도보다 무서운 존재일 수도 있다. 나는 제자가 되고 싶었다기보다 나마저 그런 존재가 되지는 죽어도 않아야겠다는 마음이 너무 컸던 거겠지. 인성을 알고 미리 마음의 제한을 두고 들어갔던 거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정을 알고 난 후의 선택이었으니까.  

물론 학생은 돈 내면 되고, 교사/교수는 취직하면 된다. 서로 무관한 현실이다. 여기 사람들은 생존과 생계에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극단적이고 전근대적이고 무협소설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개념 자체가 없다. 그냥 갑을적이고 현대적이고 자본주의적이다. 다른 관계들과 마찬가지로. 이 '편한' 상태에 대해서는 다들 참으로 인식이 강해서 어떻게든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우리 서로 스트레스 주지 말자. (나는 바쁘고, 또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오늘도 나이스하게." 피차 그런다. 나는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자꾸 놀란다. 종류 가리지 않고 만사가 그런다. 이런 식으로도 잘 굴러가는 것 같아서 더 놀란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분야는 이제 별로 없다. 내막을 모르겠지만. 알아서 좋을 것은 없어 보인다. 그리고 또 "너희들의 양심"에 대해서 답변을 요구하는 주변인들이 있다. 전생에 새우였나? 

양심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교수님 아래에서는 나만 예외가 되고 싶지 않다는 공포가 있다. 이제 반대의 상황인가. 옛 교수님에게는 정상적인 학생이 필요했다. 그게 나만이어야 했던 것이 아니다. 그건 안다. 하지만 절박했다. 그래서 내가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처음 만난 정상적인 학생을 이상적인 제자로 만들려는 의지가 현실의 무게만큼이나 절망한 세월만큼이나 강력해져 있었다. 나도 만학이라 절박했다. 현실적으로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니 뻔한 상황이 벌어졌을 뿐이다. 지금 교수님에게는 어쨌든 나는 필요 없다. 떠내려온 난민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로 올 때 이제는 내가 무엇도 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 경력으로 탱크가 된다는 건 기적이다. 떠밀리듯 유학을 결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협조하지 않았던 나는 피해자가 될 자격도 없었다. 그런데도 피켓을 들 것이 아니라면 여기서 더 이상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없는 처지가 되었다. 피켓을 들 수 있는 물증이 없었다. 행정실의 공지가 아닌 내부 공지 메일은 나에게만 오지 않고 있었다. 그 사실조차 우연히 알았다. 하지만 예측하고 있던 필터링이라 그냥 여전히 웃겼다. 임시 위원회같은 것이라도 꾸려질 가능성이 없거나 적어도 제대로는 돌아가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도 잠시 원망이 스쳤던 기억은 있다. 관계적인 것은 아니라도 나에게는 이미 많은 계기들이 되었던 분이었으니까. 그리고 거듭되었던 포기가. 하지만 일방적인 것이었다. 내 속사정일 뿐이다. 나는 필요한 존재가 아니고, 예외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유감이 없었던 그들에게 지금은 유감이 있다. 동문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들을 처음부터 이해했지만, 그들은 심부름하고 구경하고 즐기는 데서 그치지를 않았으니까. 신이 봤다면 그 정도의 자격은 있다고 할 거다.            

그런데 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나로서는 그게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게 무엇이든 되라고 하셨다는 게 중요했다. 나답지 않게. 나다울 수 없게 된 형편이기도 했겠지. 아니 누가 나에게 이제 와 그게 무엇이든 되라고 하겠나? 어떻게 살려고 그러고 사느냐는 말도 더 이상 하지 않는데. 준비하신 말씀인 것 같다는 느낌에는 울고 싶었다. 솔직히 말씀은 믿기지 않았다. 정말 귀를 의심했다. 격려차이겠거니. 기분상이겠거니. 믿고 싶어하는 내 마음이 더 문제로 보였다. 그런데 보내 주신 논문 때문에 믿게 되었다. 그리고 다 말라 버린 줄 알았던 욕망이 엄청나게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정확히 그 상황에 악몽이 있었다. 되풀이된다면, 이번에야말로 내가 견디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트라우마라는 말을 함부로 쓰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유리 멘탈은 아니다. 그런데 오늘 새삼 깨달은 것은, 내가 과거의 악몽을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극심한 불안 증세가 사라졌다고 해서 바로 건강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미셸이 타이핑 속도 때문에 고생하는 장면 이후로 영화는 더 이상 영화가 아니었다. 거울도 이렇게 나만 비추는 거울일 수가 없었다. 영화에, 만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의 제한된 감동에 미안하다. 다른 이유로 나에게도 속도/시간 문제가 있으니까. 매일이 전쟁이 된 것은 그 때문이다. 대단히 뭘 하려고 해서가 아닌데...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세 번 있었다. 다섯 살 때와 열세 살 때는 다른 사람이 내게 준 것이었고, 스물-스물한 살에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준 도움이었다. 그가 내게 고마워했던 것도 아니었고, 우리가 관계를 이어간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그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니까. 단순히 성과 때문이 아니다. 고통스러워하고 무서워하던 것을 좋아하고 잘하게 되고 그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목표로 삼았던 것은 성과가 아니라 그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믿어 주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 그것이 생각보다 중요했다. 그 사실을 진행 과정에서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성공하게 해 준 그에게 고맙다. 그가 끈을 놓을까 봐 늘 걱정했었고 잘 잡아 주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고마웠었다. 이런 행복은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가 없다. 사람 사이에서는 주는 것도 받는 사람이 허락해야만 줄 수 있다. 왜냐하면 받는 것에는 시간이나 믿음뿐만 아니라 용기도 따르고 위험도 따른다. 무엇보다 비움이 따른다. 그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 나의 그는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없는 나의 말만을 믿고 자신의 오랜 공포와 믿음을 버려 주었다. 어두운 고통 속에서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와 주었고 밝은 고통을 떨면서도 감내해 주었다. 의심도 없이. 나라면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그의 모습은 늘 신기했고 환상적이었다. 이것들을 깨달았던 스물세 살 그때 처음 진로를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광장에서 몇 차례에 걸쳐 우연히 알게 된, 평소 나의 일상에서는 도통 접할 수 없었던, 이 땅의 사람들의 진짜 심성 때문에 그 선택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한길이다. 누구의 눈에도 그리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미셸의 마음도 티쳐의 마음도 안다. 내가 평생 중국 무협영화를 사랑하는 진짜 이유도 실은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내가 마음을 다쳤던 이유도 나았던 이유도, 다치기 전부터 동경했고 낫기 전에도 욕망했기 때문이다. 그 상처만큼 이 믿음만큼 두렵다.       

이제는 속으로만이 아니라 자타공인 죄인이 되었네. 

사느라 바쁘기 싫으니까 죽느라 바쁘고 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