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03, 2020

Albrecht Dürer (1514) Melencolia I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동판화(1514) 멜렌콜리아(Melencolia) I 

Melencolia I
Albrecht Dürer, 1514  
engraving
24 cm × 18.8 cm

Erwin Panofsky (1943): 멜렌콜리아는 바다로부터 멀지 않은 으스스하고 외로운 곳에 있으며 달빛(벽 위에 걸린 모래시계의 그림자에 의해 추측할 수 있다)과 초승달 모양의 무지개에 의해 둘러싸인 혜성의 창백한 미광은 어스레하게 빛난다. / 멜렌콜리아는 침울한 푸토와 함께 있다. 푸토는 안 쓰는 회전 숫돌 위에 앉아서 석판 위에 무언가를 쓰고 있다. 굶어서 떨고 있는 사냥개도 보인다. / 멜렌콜리아는 우울한 휴지(休止) 상태에 있다. 흐트러진 머리에 게을러 보이는 옷차림새의 그녀는 자신의 손에 머리를 괴고 쉬고 있으며, 다른쪽 손은 기계적으로 컴퍼스를 쥐고 있으며 팔뚝은 덮인 책 위에 올려져 있다. 그녀의 눈은 침울하게 위를 치켜다보고 있다. / 미완성된 건물에는 천칭과 모래시계와 종이 달려 있고, 종 아래 벽에는 이른바 마방진(magic square)이 있다. 석조건물에 기대어 서 있는 나무 사다리는 건물의 불완전함을 뜻하는 듯하다. 지면에는 건축과 목공술과 관련된 도구와 물품들이 어질러져 있다. / 회전 숫돌 외에도 수평계, 톱, 자, 구부러진 못, 거푸집(주형), 도가니, 타고 있는 석탄을 그러모을 통(아마도 납을 녹여 만들었을 것이다), 연필꽂이와 잉크병 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멜렌콜리아의 치마 밑에 숨겨져 있는 도구들은(한스 되링 Hans Döring의 목판화에도 나오는 것들이다) 풀무의 구멍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 두 가지 물품은 도구라기보다는 건축과 목공술의 기초가 되는 과학적 원리의 상징이나 전형으로 생각된다. 이 둘은 바로 나무로 된 구체와, 끝이 잘려진 돌의 단층면이다. 모래시계, 천칭, 마방진, 컴퍼스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상징과 표상은 '우주의 건축가'와 유사한 이 지상의 장인이 자신의 일에 수학의 법칙과, 플라톤의 [지혜의 서]에서 말하는 '치수, 수, 무게'의 법칙을 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98-99) 

뒤러의 동판화는 멜렌콜리아의 활발하지 않은 자세와 석판에 낙서하는 푸토의 부지런함이 날카롭게 대조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멜렌콜리아가 게으름을 피우고, 그 이전 삽화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실톳대를 손에서 버린 것은 서로 정반대의 이유를 가진다는 점이다. 그렇게 신분이 낮은 여인은 순전히 게으름 때문에 잠에 빠져든 반면, 멜렌콜리아는 이른바 극도의 각성상태에 있다.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의 눈초리는 무익한 탐구에 열중해 있다. 그녀는 활발하지 않다. 이는 게을러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활동이 그녀에게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에너지는 잠이 아닌 사색에 의해서 마비되었다. / 그래서 뒤러의 동판화에서 전체 우울 개념은 그의 선배 미술가들의 한계를 넘어 전체적으로 바뀌게 된다. 게으른 주부를 대신하여 초월적인(그녀는 날개로 인해, 또한 지성과 상상력의 도움에 의해 초월할 수 있다) 인물이 창조적 노력과 과학적 탐구의 도구와 상징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뒤러의 구성 속에 직조되어 들어간 제2의, 좀더 섬세한 전통의 요소를 인식할 수 있다. (109)

사실상 동판화에서 기구들의 전체 배열은 '기하학의 의인상'을 필두로 요약할 수 있다. 책/잉크병/컴퍼스는 순수기하학을 나타내고, 마방진/모래시계/천칭은 공간과 시간의 측정을 나타내며(옛 기억술에서 시구 하나를 인용해보자. '기하학은 무게를 잰다'[Geo ponderat]), 공작 도구들은 응용기하학을 나타내고, 뾰족하게 잘려나간 능면체는 도형기하학을, 특히 입체화법(stereography)과 원근법을 나타낸다. / 뒤러가 상상한 것은, 의인화된 '예술'의 지력과 기능을 겸비하고 있으면서도 '어두운 기질'의 구름 아래에서 절망하는 인물이다. 그는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기하학'을 묘사하였다. 혹은 다른 식으로 얘기하자면, 기하학이라는 단어에 포함된 자질을 갖춘 '우울질', 곧 '예술가의 우울'(Melancholia artificalis)을 묘사한 것이다. (112-113)

뒤러는 사고력과 상상력의 중심인 머리를 주먹으로 받치게 하고, 기질적이거나 의학적인 특징을 표정이 풍부한 몸짓으로 바꾸었다. 그의 멜렌콜리아는 구두쇠도 아니고 정신박약자도 아닌, 혼돈스러운 사색가이다. 그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사물을 들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고집하고 있는 모습이다. (115) 

완전한 숙달은, 뒤러에 따르면(그리고 르네상스의 모든 사상가들에 따르면) 두 가지 교양의 완전한 일치로부터 생겨난다. 즉 이론적 통찰력, 특히 기하학의 완벽한 구사력('지식'의 본래 의미로서의 '쿤스트'[Kunst])과, 실천적 기능(브라우흐[Brauch])이 그것이다. 그는 "이 두 가지는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는 다른 하나 없이는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 성숙하고 학식이 풍부한 멜렌콜리아는 사색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이론적 통찰력'을 상징한다. 석판 위에 무언가를 의미없이 휘갈겨쓰며 무지한 인상을 주는 순수한 아이는 행동하지만 사색할 수 없는 '실천적 기능'을 상징한다(그래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론적 통찰력을 나타내는 뒤러의 표현 '쿤스트'가 여성명사이고, 한편으로 실천적 기능을 나타내는 용어 '브라우흐'는 남성명사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론과 실천은 뒤러의 요청과 달리 '서로 상반되며' 하지만 완전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기력과 침울함이다. (118-119)

우울질 사람들은 추상적이 철학 개념이 아닌, 구체적인 지적 이미지에 의해 사고하게 된다. 즉 기하학의 재능을 부여받은 것이다(앙리 자신의 정의에서는 '수학'의 분야를 위치와 공간[situs et magnitudo]의 과학에 한정지었다). 역으로 말해서, 기하학의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범위를 넘어선 영역을 의식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한계와 불만으로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우울질을 얻게 되는 것이다. (126-127) / 뒤러의 멜렌콜리아는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 사고를 확장할 수 없는' 사람들에 속한다. 그녀의 우울은 열망하는 것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거기에 이르는 것을 단념하는 존재의 무력증이다. (130) /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알브레히트 뒤러의 정신적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135) 

- 임산 옮김(2006, 한길아트) 


아, 찔려. 그렇다면 멜렌콜리아 곁에서 무지하고 부지런한 푸토가 될래. 문제를 해결하는 공학의 고단함과 섬기는 맘이 늘 그리우니까.  


cf. 

https://www.spiegel.de/wissenschaft/mensch/albrecht-duerers-polyeder-ein-mysterioeses-raetsel-wird-500-a-1009959.html

http://stubber.math-inf.uni-greifswald.de/mathematik+kunst/kuenstler_duer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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