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01, 2016

self-reporting

바람결에 닿을 때, 목으로 음식이 넘어갈 때, 극도로 낯설고 끔찍했던 감각의 생지옥은 거의 지나갔다. 모든 것이 그대로임을 알겠는데도 다른 행성에 있는 것 같은 이질감과 구토증... 편의점 직원의 업무용 인삿말 같은 생판 남들의 작은 친절에 눈물이 쏟아지고 다리 힘이 풀려 주저앉을 것을 간신히 참는 일들도 많이 줄었다. 이동 중 거리에서, 지하철 안에서 구경하는 사람들 앞에서 목놓아 우는 일도 없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일상을 살기 위해 건물 출입문을 여는 동시에 변검 하듯 표정을 감춰야 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호흡 다스리려고 벽 잡고 씨름할 필요도 없고. 운전할 때 추락하거나 추돌하려는 신체의 강력한 유혹도 정도가 많이 줄었다. 배를 갈라 내장을 찢는 것 같은 통증들 때문에 숨쉬는 게 원망스럽고 다음 일 초가 공포였는데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고통을 이제는 기억에서 떠올린다. 하지만 아직 작품 문제로 관계자들과 대면하기가 힘들다. 도리를 못 하고 짐만 되고 있다. 엄마한테는 치명적일 때 같은 편이 되어 주지 못하고 속으로 원망만 들어서 나도 괴롭다. 동생이 있었기에 다행이다.

어떠한 현실의 결과를 계획하지 못하고 순간의 욕구들에 가치를 두면서 먼 꿈만 꾸면서, 과정에서의 공감과 이해를 나누는 시간에 삶의 행복을 찾다가 그 상대가 사라지자 모든 의미를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되었다. 끈 떨어진 연처럼 곤두박질쳤다. 퇴행과 히스테리가 내가 신뢰감을 가지는 극소수의 사람들 앞에서 주체할 수 없이 나타나고, 제어가 안 되는 것이지 자각이 안 되는 것이 아닌 나의 심정은 참담했다. 내가 가해자이니 참담한 기분에 젖을 자격이 없는 셈이라 더욱 속수무책이었고. 지나치게 말이 없다가 지나치게 말이 많은 성격이 되니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 거기에 적응하는 것도 아직 불편하다. 많은 약속을 어겼고 너무나 많은 거절을 했고, 그런 행태에 대한 그전까지의 내 혐오와 몰이해가 무색해졌고, 그 모든 나의 탓들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관련된 전후 사정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충분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남에 대해 절대로 함부로 비난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사회에 적합한 인간관계 운용을 위해 필요한 적절한 위악을 전혀 수행할 여력이 없었기에, 직접적인 이해 관계가 없는, 그래서 안정적이고 좋았을 수 있었던 관계들에마저도 실패했다. 나를 향했던 그들의 올무와 화살도 결국 내가 만들었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아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습관이 그나마 나를 더 이상으로는 망가지지 않게 해 주어서 다행이었다. 수없이 다시 생각해도 사람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나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들이 나를 꽤나 좋아해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매번 놀랍다. 내가 얼마나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이었는지 너무 다양한 각도에서 확인하게 된다.

시네마 파라디소의 알프레도와 나루토의 지라이야가 합친 것 같은, 도무지 내 인생 같지가 않은 영화 속 캐릭터 같은 사부에게, 이제는 다시 내 나이에 걸맞는 적절한 위악을 갖추어서 관계를 잘해 보겠답시고 고마운 줄도 모르고 죄송한 줄도 모르는 것처럼 굴고 있었는데. 그제 일로 정신이 좀 든 것 같다. 이제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고 그냥 나답게 그리고 조심만 해야겠다.

상실 이후로 처음으로 뱃속으로부터 (비록 울분이라는 좋지 않은 것이었지만 좌우간) 무언가가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살려는 무엇이었다고 생각된다. 사실은, 몇 주째 동일한 일정이었는데 물론 오늘 피곤해서 낮잠까지 잤긴 했지만 예전과 달리 몸이 가볍고 주례 행사였던 몸살도 아마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추운데 자꾸 아파서 이제 3년째가 되니 더욱 우울했었는데 적어도 생물체로서의 건강은 느리지만 꾸준히 회복되는 것 같다. 사실 난 죽어도 되니까, 이번 대학원 올 때 굶어 죽을 가능성 감수하고 그거 심적으로 감당하는 데 장기간이나 보내고서 온 거였으니까. 가장 사랑하는 것을 잃은 지금 이제 세상 겁날 것도 없네.

나름대로 공들여 세운 가치관들에 자신을 잃었었는데, 최근에 주변의 이런저런 일들을 보고 듣고 나니... 바꾸기보다는 흔들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경험상, 내가 너무 비장해질 때는 스스로 전혀 모르고 있던 욕망은 아니지만 좇을 만한 가치는 없는 것이 맹위를 부리고 있으면서 바로 그 때문에 그 사실을 왜곡, 억압, 봉인하고 다른 것으로 바꿔치기해서 결과적으로 엉뚱한 것에 주목하고 착각하고 있을 때이다. 자고로 비장함이란 생명이 죽고 사는 일과 그에 영향을 미치는 사태에 대해서만 적합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위장술이야. 착시가 사라지면 바로 해제된다. 내가 틀리다고 믿는 것들에 새삼 나를 맞추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보답하면서 살아야지.





사립 학교에 비용을 내고 등록한 학생들을 직원으로 취급하는 것은 물론 부당하지만 상황상 이해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어딜 가나 그렇지 않은 교수가 드물다. 전엔 더한 일들도 많았고 이미 견뎌낸 것들도 많았다. 학교 밖은 다른 각종 양상들로 더 무섭다. 격무라는 것도 2년 동안 겪은 바로는 내 기준으로는 할 만한 정도였다. 내 공부? 안 자면 된다. 석사 과정 때보다 배는 더 많이 자고 다 할 수 있던 걸. 수강, 업무, 학습, 연구까지. 원래 소위 올인하는 스타일이라서 오히려 좋았다. 인간적으로는 여러가지 면에서 좋아하는 분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소중했던 것, 많은 기대와 격려를 받았다. 정말 갚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디어와 중간 결과물을 실질적인 어드바이스 없이 가져다 쓰시려고만 하시는 것에는 협조할 수가 없다. 내용 지도만 해 주셨어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었는데... 내 주제와 맞는 전공은 국내 어느 전공에도 없어서 애초에 기대한 적이 없지만. 다 늦게 새로운 공부하면서 오로지 학문적으로 성장하려는 목적으로 실질적으로 포기했던 것들이 많았던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나는 학위 증서를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니다. 기준으로 여긴 것은 맞지만. 그래서 내 가치관으로는 오히려 약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범이 되는 상황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다. 학문과 교육을 사업화하시는 장기 기획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좋은 취지로 그러신다고 믿고, 또 그런 일들도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교육에 대해서만은 거의 유일하게 극좌의 노선이다. 골 빈 내가 예외적으로 뚜렷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문제가 교육 분야다. 이미 초딩일 때 외국의 대안 학교들에 대한 자료를 모았던 되바라진 학생이었고, 순전히 취미로 외국의 교육 공학 특수 주제 학술서를 구입해서 읽은 적이 있는 정도이다. 개인 연구만 하면 되면 학생이 가타부타 상관할 일이 아니고 문제가 없을 텐데 그렇지 않고 업무를 조건으로 삼으시니까 이게 나로서는 단순히 일을 해야 한다는 측면이 아니라 중요한 가치관 충돌이 되어 버렸다.

수학 철학을 독학한다는 것은 고전 발레를 독학으로 익히려는 급의 어불성설이다. 수학 철학"사"나 수리 철학 정도가 아니고서는 책도 없다. 다 논문이라서. 그걸 읽으려면 신체적 트레이닝과 규정된 체력 단련 비슷한 과정을 장기간 거쳐야 한다. 이공계와 똑같다. 프로 발레리나가 되어 현대 발레를 개척하기 전에는 힙합과 같은 자유로움이 단순히 허용되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내적으로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특정한 근육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건이 안 되는 것을 익히는 데 이골이 난 인생을 어쩌다 보니 살아온 나로서는 그래도 하려고 했다.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 씨름했다. 그렇지만 내 주제로 논문에 적용까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10년 이상 그 전공을 학제 안에서 습득해야만 하는 분야다. 인지심리학과 뇌공학을 거의 남의 연구실 침공하는 태세로 학습해서 기호학에 적용하려고 실제로 진행하고 있었던 나의 판단이다. 이전 전공과 패러다임이 같아 내공은 있다는 사실을 발판 삼아 남의 랩세미나에까지 이미 두 학기를 철판 깔고 참석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기적같이 사부를 만났다. 전공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인데, 제자로 삼겠다고 선언하시더니 난 그냥 칼국수만 맛있게 얻어 먹었는데 혼자 공부하고 있는 걸 어쩌다 아시면 가져와 보라고 하신다.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진도와 흥미에 가속도만 붙어 간다.

사람이라 막연한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록 융합이지만(국내라는 특수 경우 오히려 전문성은 떨어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어쨌든 내겐 생소한 인문계에서 연구는 커녕 기초 학습에 내가 과연 적응이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내심 작업에 치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융합 전공의 깊이를 넘어서서 나는 점점 더 아래쪽으로 파 내려가고 있다. 전혀 다른 분야의 교수님께 자문 결과 아무래도 전공을 바꾸는 것은 말리시는 것 같아서 결정이 도저히 안 나서 아예 시험 삼아 차라리 안으로 들어가 부딪혀 본답시고 한 학기를 보냈는데, 현재에는 오히려 완전히 넘어가 버린 격이 되었다. 하면 할수록 재미있다.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원래 전공만 해도 힘든데, 하나만 읽어도 내겐 너무 어려운 데리다와 수리 논리를 동시에 읽고 있으려니 정말 너무 힘들다. 이쪽 하다가 힘들면 쉰답시고 저쪽 하고, 저쪽 하다가 지치면 다시 이쪽하고... 그래서 계속 이러고 있는 건가? 내가 공부하는 것 자체를 이렇게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

신상이 드러날 수 있는 내용은 안 쓰는 블로그인데, 하도 머릿속이 복잡해서 이제는 반 년이 넘었는데도 정리가 안 되어서 굳이 한 번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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