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anuary 31, 2016

style for doing vs. style in doing

어제, 교수님의 명칭으로만 그룹 스터디이지 실제로는 순전한 개인 교습을 마치고 일어나려는 중에 벌써 일 년이 넘도록 줄기차게 유학을 권유하시는 말씀을 또 듣다가 어쩌다가 내가 정말이지 바락 화를 터트렸다. 완전 배은망덕 어이 상실 인간 말종인 셈인데. 내 사정이야 그렇다 치고. 아무리 평소에도 그러는 둥 지낸다 쳐도 이번만은 애써 참아 주려 하시는 거겠거니 싶어서, 내가 내가 싫어서 소침해져 있는데, 영문은 모르겠지만 오히려 기분이 더 좋으신 것 같았다. 그 속을 어찌 알랴마는.

"그럼, 뭐가 중요한데?"
"내가(=자기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가!"

평소에는 솔직히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또는 착각하고 있기로는 사부나 나나 농담인 측면이 많다. 나라고 영 눈치를 안 살피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 순간에 나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사부는 내가 철학에 소질이 있고, 다른 일을 하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신다. 나는 전자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물론 다는 아니지만 알겠는 점도 있는데 후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여지껏 살면서 내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한도의 관계 안에서만 보더라도 최소한 2개 이상의 소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을 본 적이 없다.) 말씀이 아니라도, 안 그래도 여의치 않은 상황 때문에 중단했었던 이후 (그리고 몇 달 후에 처음 만났으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심만 하다가 얼마 전에야 겨우 무엇이든 그만둔다는 것은 마음에 걸린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줄곧 나를 거의 못 쫓아내서 안달이신 지경이다. 아무튼 그래서, 알고 보면 그다지 정말 그렇게만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신 줄 알겠는데도 거의 위악적으로 부정적인 말씀을 계속하신다.

그래. 나 아직도 제정신 아니다. 여전히 그만 살고 싶다. 그건 진심이지만 또한 살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안다. 내 가치관의 유일했던 동지가 사라진 시점을 전후로 합쳐 5년 정도의 기억이 여태 희미하다. 좌우간, 그 모든 와중에도 내 동기와 목적만은 변하지 않았으므로, 그것 역시 잊은 시간이 많았지만 결국 잊어 버리지는 않았으므로, 바로 오로지 그렇기 때문에, 선택을 바꿀 만한 동력이 없는 것이다. 엄청나게 건강을 회복한 내가 지금 싸우고 있는 것은 나의 무력감이니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을 하기 위해 하려던 것을 계속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만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부는 정상적으로 현실을 고려하시니까 계속 그러시는 거고.

style in doing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style for doing에 나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 그럴 여유가 없다.

나는 내게 주어진 모든 부당하고 불합리한 것들에 계속 화가 나는 건전한 내가 열심히 되고, 그 내용을 그 자체로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 선에서 여기저기에 말할(report) 거고, 그 모든 주어진 것들에 대처하고 부딪히는 나만의 "방식"은 그 모든 것들과는 (비록 내용상으로는 결코 분리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신이 다하는 최대한 독립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할 것이다. 달리 어떻게 살면 되는지도 모르겠고.

뭐, 이런다고 사부께서 하시는 말씀과 배타적일 필요는 없으니까...

단지,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놓을 줄 아는 양심을 기르자. 내가 이걸 못 해서 사부 말씀이 안 들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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