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26, 2020

too devoted to remain to be a subordinate

네가 내 거북선이다, 하셨을 때 난, 교수님은 저한테 선조세요, 하려고 했다. 말해야 한다고 느꼈다. 어렵게 주는 기회를 받지 않는 날 보며 늘 그렇듯 간편히 가벼워지는 그를 보면서, 돌부처는 돌아앉아도 사람은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또다시 보면서, 마지막일지 모를 돌이킬 기회마저 내가 만들어 주기 싫었으니까. 이미 혼신을 바치고 있는데 그것까지 드리기 싫었다. 콩쥐 역할쯤은 거뜬했다. 그게 마음 불편들 하시다면 우렁각시도 상관 없었다. 토사구팽에도 아무 불만 없었다. 결초보은을 너무 빨리 하려고 했나? 어릴 때 삼국지연의를 너무 좋아했던 탓이다. 부조리극을 넘어 공포극이 되어 가는 무대에서 연출가가 방관으로 일관하는 그의 극 안에서 내가 빠져 주는 것이 유일하고 깔끔한 해결책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나는 전단지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했던 그곳을 떠났다. 

습관적으로 오해를 사는 타입이었다. 특히 아랫사람에게는. 잘 알겠어서 알아서 하려고 했다. 그게 잘못이었다. 그러면 안 된다, 아랫사람은. 난 비장의 무기가 되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모든 이기심의 합리화와 책임 회피의 완벽한 구실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토록 의지가 강한 사람이 그토록 마음이 약할 수도 있음을 몰랐다. 옆방 선배들이, 넌 뭐 군대 갔다 왔냐, 질려 할 때 내가 느꼈던 만족감도 분명 있었다. 다만, 그는 내게 당신이 매일 실패하는 모습을 다 보여 주었다. 연구자로서나 직업인으로서나 개인적인 자존심 문제나 심지어 자식을 키우는 고민까지도. 그 어려움들을 알게 된 것이, 쥐가 고양이의 곤경을 알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일 때도 있었고 사생활의 선을 넘는 듯해 난처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것이 단지 방심이나 무시가 아니었음을 알기에, 그 유난한 방어심과 의심 많은 성격에 예외적인 믿음과 나름의 가르침도 있었음을 알기에 이렇게 잊지 못하는 것이겠지. 

아랫사람이 너무 잘못을 안 하면, 더구나 이 시대와 맞지 않게 그렇게 강도가 강한 관계에서 너무 한결같이 그러면, 윗사람이 너무 여지가 없게 된다. 할 말이 없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잘못 하고, 내가 허술해서, 내가 죄송하다고 하고, 내가 뭐라도 바라고, 내가 처분을 기다려야겠다고, 그래서 끝까지 밑에 있어야겠다고 다짐했고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는데, 참 이런 류의 노력이 얼마나 과대망상적이고 불건전하고 소모적인지 거듭 확인시키는 완전 건강하고 책임을 지는 분을 만나니 내 모습은 영락없이 갖은 질병과 공포에 시달리는 유기견 꼴이다. 먹이를 주는 손을 문다. 원인은 과거에 있는데, 이 분은 새 처방을 고민하신다. 난 환자에서 죄인이 된다. 포기될까 봐 두렵다.  

그동안 배운 것 중 하나는 예민함과 강건함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문 앞에 스토킹도 아니고 그렇게 여러 번 갔었던  것이 괜한 예감 때문이 아니었나 보다. 사람이 사람을 기르는 법을 아는 분을 난생 처음 겪는데, 이렇게 부유한 정원에 처음 들어와 보는데, 그 공력과 이 양분을 내가 성장하는 데 쓰지 못하고 과거의 악령들과 싸우는 데 낭비하고 있으니 원통하고 아까워서 미치겠다. 아무리 명의라도, 아니 실은 명의니까 어쩌면 더, 병세가 너무 중하면 받지 않으려고 하실 것 같아 두려웠다. 들키지 않기 위해 가벼워 보이려고 많이 애썼는데, 이젠 정말 다 지우고 싶다. 아니면 진짜 병원에 가야 한다. 이건 양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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