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25, 2016

cogency vs. persuation

상대방보다 내가 더 많이 아는 것에 대해서 말할 때의 문제.

"시장의 우상"에 빠지지 않으려는 경계심과 함께 내가 새롭게 형성한 독창적인 사고가 아님을 분명히 하려는 김치국 마시는 셈인 결벽증 그리고 "극장의 우상"을 무심코 주입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가르쳐 주는 식으로 분위기가 흘러가지 않도록 하고 오히려 배경 지식과 상관없이 각자의 경험과 사고력만으로 자유롭게 논의하고 싶은 의도에서, 출처를 꼼꼼히 밝히는 편이다. 일종의 거리두기인 것이다. '제삼자는 이렇게 생각했고 표현했고 또는 그게 유행이 되어서 어떤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주로 취하는 의견은 이러한데, 나는, 그리고 너는 달리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는 그 중 어떤 것에 왜 동의하는지 말해 보자'인 것이다. 남들의 의견을 내 의견인 것처럼 말하지 않고, 서로 동의하지 않고 있는 생각을 서로 알려고는 하지 않으면서 무성의하게 공감대를 뿌리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출처와 얽혀 있는 분야나 주제 들에 관심이 있었던 경우가 아닌 한, 그러한 사실 조각들은 그저 '잘난 체'용 장식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보통 상대가 관심을 두었던 것은 그러한 딱딱한 꼬리표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부담으로 느껴진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내 경우 어지간해서는 흥미롭지 않은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자주는 심지어 이전까지의 화제와 무관하게 추가적인 재미를 느끼고, 무언가 구체적인 것을 얻었으니 나중에도 혼자 꺼내 보거나 단초 삼아 아직 안 가 본 길을 따라가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기분이 들지만. 겸손해서가 전혀 아니라 호기심 때문에 나는 출처와 바깥 맥락을 흔쾌히 이야기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대로 애써 해 주려고 하는 것인데, 이건 내 사정일 뿐이고. 특히 "동굴의 우상"에 묶여 있는 상대에게는 싸구려 "엘리티즘"으로 넘겨지기 마련이다.        

상당한 세월을 들여서 확인하고 검토한 내용을 호의로 단번에 내어 준 것을 가지고 나에 대한 상대방의 인상과 감정이 일차적인 신뢰도를 쉽게 저울질할 때 유쾌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상대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아니라면, 여유와 농담으로 대처하는 것이 괜찮은 것 같다. 문제는, 내가 설익어서 그 출처나 관련 내용들을 적절한 분량으로 단정하게 전달할 능력이 모자란 경우이다. 대부분 그러한 상태이므로, 모든 것에 통달해져서 거의 죽음에 이를 때까지 입을 다물거나, 아니면 어설픈 채로도 여유를 유지하는 마음의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만큼만 듣고 싶어 하는 대로 말해 주는 편안한 방법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남에 대해서도 명목적이지도 의례적이지도 이중적이지도 않고 싶으니까. 귀찮을 정도의 상대라면 안 보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삶의 이력 때문에, 특별히 대인 활동이 주요한 직업을 가진 사람에 버금갈 만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부대껴 왔다. interpersonality에서의 타고난 열세에도 불구하고 후천적으로 체득한 노하우들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는데, 막상 특정 주제의 대화에 있어서는 인간 관계적인 차원과는 달리 직분에 따른 언어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여전히 어렵다. 왜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상황상 가능하기만 하면 태도를 바꾸어 내주지도 않은 윗자리에 주저앉아 땡깡처럼 권위주의를 부리곤 하는지 알 것 같아지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아주 의식적으로 생산성 없어 보이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등신 같이. "인정"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사회적으로 공인된 방법들을 사지 말자. 사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나 또한 애써 추구할 가치로 여기라는 유혹에 넘어가지 말자. 사람들을 다루는 요령도 배우지 말자. 혹여 자꾸 배워지면 매번 버리자. 다루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니까.



cf. 포스트와 무관해 보이지만 이 고민의 처음 문제들 중 하나였던 주제 - 인문학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가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따로 떨어져 있지도 않아서 생기는 문제에서 파생하는 문제 관련 => 고나무@한겨례: '이방인' 오역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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