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ismond Thalberg (1812-1871, aut):
[0:00] Fantaisie sur des motifs de l’opéra Les Huguenots de Meyerbeer, Op. 20
[14:49] Grand caprice sur des motifs de l’opéra Charles VI de F. Halévy, Op. 48
[25:19] L’Art du chant appliqué au piano, Op. 70
[39:32] Grande fantaisie sur des motifs de l’opéra La muette de portici de D. F. E. Auber, Op. 52
[53:06] Grand caprice sur la marche de l’apothéose de Berlioz, Op. 58
학교가 아니고 장소도 아닌 지하철 노선도를 말할 때부터 거의 확신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답사 후 에스코트 하려고 (그건 그거고 난 나라서 미안. 평소 내 여친들은 좀 편하다.) 기다리다가 5분 전에 맞추어 보낸 문자에도 답이 없고 늦는 시간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다시 카페로 복귀. 40분 만에 도착한 문자가 정확히 "앗.....". 그리고 또 30분을 감감/불통. 근처라서 20분 만에 올 수 있다고 하더니 50분 후 도착. => 두 시간 후 수면 바지 차림으로 등장. 집이 근처란다. "익선동이 있죠." 카페를 "직접 알아보십시오." '직접'이란 문자가 결정적 힌트(=失手)였다. (도일형 말고 크리스티형 추리 소설/영화에서 내가 범인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란 없다. 어린 시절 동생에게 유일하게 존경받았던 이유.)
그리고 또 두 시간 반 후 "연필"을 가져왔다면서 (가방을 열기 위해 일어나 있던) 내 눈 앞까지 들어 보여 준다. 반 토막 난 연필. (찾기 힘들었겠다. 초딩이 깎은 듯 흑연 부위가 기형적 비대칭으로 노출되고 무거운 물건에 찍혀 자루 부분이 패여 있는. 설마 제작까지 했을까?) 내 태연한 반응에 거듭 당황스러움을 내보인 것은 처음으로 인상적(인간적?)이었다. (역시 예상했던 시나리오라 난 펜이 여러 자루 준비되어 있었다. 제가 필기구 오타쿠. 취향만 말씀해 주셈.)
나의 3차 결선 디펜스는 12월 21일. 1차보다 오래 진행되었다. (연구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일인데 쉬거나 노는 것도 아닌 행위로는 5분도 소모하는 것을 허용치 않았던 서 교수님이 몇 번 떠올랐다. 내가 받은 훈육은 주위에서 마루타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혹독했지만 정작 난 좋기만 했다. 무의미한 일 안 해도 되어서 편했다. 그렇게 잘못 들인 길을 바로잡느라 교수님께서 고생하셨지만.) 처음으로 교수님께 칭찬받고 싶다는 욕구가 들었다. 난 나한테도 그런 건강한 욕구가 잠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무척 기쁘다. 늘 자격지심에 시달리기만 했는데. (드물게 칭찬을 받아도 믿지를 못했다.)
처음 두 시간 동안 난 내가 잊지 못하고 어떤 의미를 찾는 듯 자주 떠올리던 기억들이야말로 내게 정녕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특히 2013-2015년 서관 4층에서 교수님 연구실 앞까지 (다행히 문과대라서 밤에는 아무도 없는) 컴컴한 복도를 미친 사람처럼 하루에 수십 번씩 오갔던 때. 가끔은 연습 삼아 방문을 노크해 보면서 심장이 아팠던 때. 내가 2012년 7월 폭우 오던 날 교양관 계단을 올라갔더라면 달라졌을까 수없이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에 의해 이제야 얼마나 의미 있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행복을 배웠다. 그리고 나머지 세 시간 동안 그 "프랑스 식"에 대해 진저리치게 맞장구치며 나의 절절한 하소연을 쏟아 냈다. 나로서는 다른 데서는 풀면 안 되는 스트레스를 풀었다. 환상의 디펜스였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집에 오니 마치 오늘(=어제)을 보상이라도 하듯, 아니 송두리째 날려 버린, 기절할 뻔한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그래서 어제의 일을 conte로 적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등 떠밀려 물에 빠졌는데, 물속 깊은 곳까지 들어온 손이 순식간에 건져 올려 보송보송 말린 후 포근한 담요를 덮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이 또한 교수님 작품에서 생겨 나온 한 조각임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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