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소모가 심하면 늘 그렇듯 허리가 끊어질라 해서 꼼짝도 못 한다. 이러고 나자빠지고 있는 걸 아신다면 아무리 교수님이라도 모든 인내심을 놓으시겠지. 하면 더 못 일어난다. 나는 교수님이 인내심이 많으시거나 특별히 관대하시다는 느낌을 받았던 순간이 단 한 번도 없다. 정확히 정반대의 느낌이 자주 온다. 나는 상당히 관대한 사람이다. 그래서 더 잘 느껴진다. (난 나한테 한없이 관대하거든. 그게 문제지만. 그러니까 남들에게도 꽤나 관대해진다.) 시한을 모르겠는 시한폭탄 앞에 서 있는 심정이 매번 든다. 다만 뭔가 오묘한 원리로 인해 운 좋게 아직 안 깨지고 있는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게 아니라, 내가 아직도 무려 아리스토텔레스를 버전까지 번갈아 읽기나 하고 있다는 걸 아신다면 바로 끝장이려나. 이러한 인생을 계속할 이유가 있나 싶다. 지난 십 년 동안 유일하게 잘 한 일은, "그건 말씀 못 드리겠는데요."라고 말대답했던 것이 전부였다. 난 마치 못 이기는 성질이라는 듯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기실 그 순간이 몇 날처럼 긴 망설임이 많이도 오갔다. 서 교수님 생각이 났으니까. "죽고 싶냐." 그리웠다. 비교했다. 가슴이 아팠다. 숨도 못 쉬게. 우리 교수님은 전혀 이해 못 하실 세계의 페르소나가. 난 남한테 "우리"란 말 처음 붙여 본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족들도 바로 알게 되었다. 내가 다섯 살 때 너무 다섯 살답지가 않았어서 지금 그걸 해 보고 싶은가 보다. 난 다섯 살 때 다섯 살로 연기한다는 게 억수로 힘들었다. 사실 전혀 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묻고 싶었다. "너 지금 연기하는 거지?" 아니라는 대답을 들을까 봐 무서워서 묻지를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 말을 못 알아듣겠다는 눈을 먼저 볼까 봐. 지금은 아무 노력 없이 다섯 살이 된다. 누구 앞에만 가면 신기하게.
완전 일방적으로 나를 예뻐라 하는 심 선생님은 아마 나의 막말이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그런 짓을 어떻게 합니까!" 이 분도 무난하신 분은 아니다. 난 그때 분명 뭔가가 날아올 거라고 생각했고 스스로 지은 업보를 피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면서. 실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대신 몇 사람들의 안색이 사색으로 변하는 문학적 수사가 아닌 실제의 광경을 난생 처음 목격할 수 있었고, 그것이야말로 내 잘못임을 깨달아야 했다. '그런 짓'을 하라고 당당하게 강권했던 분은 며칠 후 "파르헤지아"란 칼럼을 쓰셨다는 사실을 직접 전해 줬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못 벗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죄송하지만, 난 그대로 서 교수님 제자다. 그 분은 나의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셨고 쉼 없이 틈 없이 단련시켰다. 뼈의 차원에서. 조금도 수포로 돌아가지 않는다. 당연히 그동안의 내가 온통 수치스럽다.
꼭 전혀 자격이 없는 상태인 것이 확인이 되시면 혹시 의도는 아니신지 몰라도 계획을 말씀하실 때, 듣는 나는 감격하기보다, 안 좋아하는 표현이지만, 피눈물이 흘러내리는 느낌이 든다. 지켜오신 능숙한 어엿한 원칙들을 내가 깨뜨리시게 한 것 같아. 주워 드리고 싶다. 내 것은 아니지만.
졸업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두 가지 전혀 다른 이유로. 내가 죽겠는 건... 그걸 들키는 것이 아니다. 난 교수님께서 이미 아시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그게 무섭다. 다만 관심이 적고 너무 바쁘셔서 그런 거나 느끼고 계실 여유가 없으시기만을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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